헤어지고 얼마만큼 아파봤니, 뭉크의 <이별>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불운이 몰아치는 삶을 살아온 화가였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그는 성격 이상자에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종교에 미친 아버지를 두고 있었고,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으며, 몇 년 후에는 어머니를 대신했던 큰 누이마저도 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됐다.

뭉크 자신도 태어날 때부터 약해서 잦은 병치레를 치르며 성장했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일 때문인지 그는 고통과 광기, 불안이라는 감정을 그만의 색채와 왜곡된 형태로 화폭에 담아내는 화가가 됐다.

뭉크의 작품 중 일반인에게 가장 친숙한 그림은 1893년 作 <절규>일 것이다. 뭉크는 몰라도 <절규> 그림은 어디서 한 번 봤다고 할 정도로 매우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다. 공포와 불안에 떨며 비명을 지르는 한 남자의 모습, 그를 둘러싼 핏빛 하늘과 물결처럼 굽이치는 곡선은 남자의 흔들리는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화가는 인생에서 겪은 수많은 절망과 불안을 하나의 작품 안에 강렬하게 담아냈다.

▲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판지 위에 유화, 템페라, 파스텔, 크레용, 1893

뭉크의 절절한 감정을 담은 또 다른 작품이 있다. 1896년에 그린 <이별>이라는 그림이다. 작품의 배경은 바닷가다, 그림 속 남자와 여자는 한 공간에 있으나, 이미 여자는 남자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다. 흰옷을 입은 그녀는 긴 머리칼을 날리며 남자에게서 떠나려 하고 있다. 나무 등에 몸을 기댄 남자는 절망의 색인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그의 가슴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그의 앞에 자리한 식물은 남자의 피와 같은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뭉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의 사랑을 경험했으나 모두 숱한 상처를 받으며 실패로 끝났다.

첫사랑은 당시 신여성의 상징과도 같았던 자유분방한 연상의 유부녀와의 중독과도 같은 강렬한 사랑이었지만, 결국엔 그녀에 대한 의심과 질투에 시달리는 경험을 하며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고향 후배와 연애를 할 때는 그녀가 다른 예술가와 삼각관계에 빠져 뭉크를 떠나버렸다.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랬지만 끝내 결혼식을 올리자 이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 뭉크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마돈나>라는 작품을 그리기도 한다.

▲ 에드바르트 뭉크, ‘마돈나’, lithography, 85.6X 59.3, 1895~1902년

이후엔 제법 예술 방면에 해박하고 성격도 적극적인 상류층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만, 예전의 연애에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그녀와의 결혼에도 실패하고 만다. 혹자는 뭉크의 연애 실패를 두고 그가 어릴 적 불우한 가정환경을 보냈기에 결혼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뭉크는 마지막 연인과의 결별 이후 과도한 음주, 싸움 등으로 불안증세가 심해지고 환각증세까지 얻어가면서 점점 자아가 닫히고 사랑과 연대에 회의적인 인간형이 되어갔다. 결국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이별의 절절한 아픔 덕분에 그의 극단적인 감정들을 작품으로 녹여대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뭉크의 <이별>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검은색 옷을 입은 남성, 이별의 아픔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남성의 상실감이 절절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남자를 떠나가는 여성의 모습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인다. 여성이 이 남자를 떠나는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림에서 어떠한 답을 유추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저 헤어지는 여성의 마음을, 괴로움이 가득한 표정을 보이는 남성과 대비해 생김새도, 표정도 존재하지 않는 얼굴로 표현하고 있다. 심경을 파악할 수 없어 무심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은 역시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뭉크의 <이별> 속 남자를 다시 본다. 남자는 왜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이별에 슬퍼할까. 이별이 남자를 아프게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상실감’일 것이다. 떠나가는 이가 나에게 너무도 중요한 사람일수록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이별이 슬픈 이유에는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부정당했다는 슬픔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어본다. 가까웠던 사람에게 더는 내가 중요한 존재가 아님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가 내동댕이쳐진 듯한 패배와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내가 상대에게 고작 이 정도의 사람이었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더욱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 여기서 더 나가 상대방이 떠나간 원인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거나 따지는 경우도 나온다. 그 사람은 왜 나를 떠나가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그 사람에게 형편없는 존재였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진실은 알지 못하고 분노나 원망, 자책만 커질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별을 마주하게 될 때면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무엇이든 인과관계가 명확히 설명될 때 심적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저런 이유를 찾으며 애써 이별의 상황을 스스로 납득이 되도록 정리하려 했었으니깐.

하지만 멀어져 가는 인간관계를 붙잡고 그 이유를 찾는 동안 관계에 대한 상처는 더욱 덧났던 경우가 더 많았다. 관계의 소원함이나 단절에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많겠지만 결국엔 그저 만났다 헤어진 것뿐이었다. 굳이 내 탓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상대가 떠난 이유. 그게 무엇인지 따지려는 것보다는 ‘그저 그런 일이 있었어’라는 정도로 떠나보내 주는 건 어떨까. 그것은 그것대로 나와의 인연에서의 역할을 다하고 떠난 셈 치고 놓아주는 것.

인간관계. 참 어렵다. 내 뜻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법칙에 좌우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오랫동안 머물기를 바라고 원하는 인연이라도 그런 인연도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스치듯 사라지는 인연일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