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화가가 있다. 바로크 시대 거장으로 평가받는 레브란트 판레인. 그가 한창 성공을 거두던 젊은 시절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화려한 옷차림이 눈길을 끈다.

참고로 1606년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렘브란트는 젊은 나이에 화가로 성공을 거뒀다. 1624년부터 독립화가로 활동했고 집단 초상화(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회화 양식의 하나)를 그리며 암스테르담의 인기 화가가 됐다. 더불어 1634년에는 시장의 딸이자 재력가인 사스키아와 결혼해 부까지 거머쥐게 됐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인생이었다.

<34세의 자화상>에서 젊은 렘브란트는 팔을 난간 위에 올려두고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감상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값비싸고 품위 있어 보이는 옷, 굳게 다문 입술과 또렷한 얼굴선은 자신감을 드러낸다. 당시 렘브란트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돈도 명성도 모두 그의 것인 시대였다. 위엄 있는 표정과 자신감 있는 포즈가 그의 전성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영광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는 50세였던 1656년에 공식적인 파산 선고를 받았다. 파산의 이유가 늘 그렇듯 절제없이 돈을 낭비하며 생활하다 망한 케이스. 가지고 있던 집과 재산 모두 빼앗기고 명성도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더한 건 나중에 먼저 떠난 아내의 묘지 터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게 됐다.

렘브란트 판레인, 1668, ‘웃는 모습의 자화상(제우크시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 Oil on canvas, 82.5cm × 65cm

<웃는 모습의 자화상(제우크시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은 어둠 속에 있는 화가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 듯한 자세로 기괴하게 웃고 있다. 이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을 제우크시스와 동일시하고 있다. 제우크시스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노파를 그리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숨이 막혀 죽었다는 그리스의 화가다. 젊은 시절 자신만만했던 자화상 속 인물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다만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화상인데 더이상 본인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있다. 말년의 고통이 그를 그리 만든 걸까. 노년으로 갈수록 초라해진 자신의 삶을 마치 달관한 표정이다.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그는 끝까지 그림을 놓지는 않았으니 그저 초연해 보임이 신기하기도 하고 오묘한 기분이다.

스스로에 대한 담담함은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과거에 화려한 꿈을 꾸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가 그 화려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것 또한 냉정한 현실 아닌가. 애써 이를 부정하고 싶어서 이내 스스로를 미화하거나 감추며 누군가에게 보이려는 욕구가 있기 마련이기에, 당장 화려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나를 담담하게 바라보기란 견디기 힘든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나를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역시나 지금의 나를 담담히 받아들일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저 늘 배우는 마음으로 사는 내가 되고 싶다. 세상은 늘 끊임없이 변하기에 10년 후 20년 후의 나 역시 어떤 모습의 내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그려주는 초상화보다는 내가 스스로가 그리는 자화상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영암에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