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1주년 기념전에 ‘정종여’…그의 친일 이력은 왜 빠졌나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특별전
친일인명사전 수록 작가
결전미술전 ‘상재전장’ 특선
미술관 “기록과 성찰 취지”
홍보자료엔 관련 이력 누락
선호성 기자입력 : 2026. 08. 14(금)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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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이 광복 81주년을 기념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한국화가 청계 정종여(1914~1984)의 특별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은 정종여의 친일과 월북 등 굴곡진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기록과 성찰’의 전시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군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그의 친일 관련 이력이 빠졌다.


광복 81주년 특별전…남북 작품 63점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은 지난 1일부터 오는 10월 11일까지 상설전시실에서 광복 81주년 기념 특별전 ‘청계 정종여’를 열고 있다. 남한과 북한 시기에 제작된 회화와 드로잉 등 작품 63점을 선보이는 전시로, 미술관은 1989년 회고전 이후 37년 만에 열리는 정종여 특별전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하정웅 선생이 기증한 하정웅컬렉션 가운데 북한 시기 정종여 작품 4점을 계기로 기획됐다. 미술관은 ‘하정웅컬렉션의 작가들’ 시리즈의 하나로 정종여를 선정해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시 조명한다고 밝혔다.

군은 보도자료에서 정종여를 청전 이상범 문하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과 입선을 거듭하며 이름을 알린 한국화가로 소개했다. 이어 6·25전쟁 이후 북한으로 건너가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조선화 발전에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종여의 일제강점기 활동에는 군 보도자료에 담기지 않은 이력도 있다.



보도자료에서 빠진 일제 말 행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정종여는 일제강점 말기인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호국금강공명왕’, 1944년에는 ‘운송선을 기다리다’를 출품했다. 1944년 결전미술전람회에서는 ‘상재전장(常在戰場)’으로 특선했다. 대백과사전은 이 작품들을 일제 말 전시체제의 시국을 반영한 작품으로 설명한다.

1945년 1월 당시 신문 자료에는 정종여가 입영자에게 제공할 관음불상 1천 매를 기증했다는 내용도 남아 있다. 정종여는 이후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미술 분야에 수록됐다.

정종여의 이 같은 활동을 이해하려면 당시 그가 참여했던 전람회가 어떤 성격을 가진 무대였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청계 정종여 작가


조선미전과 결전미술전은 어떤 무대였나

조선미술전람회는 조선총독부가 1922년부터 1944년까지 모두 23차례 개최한 관 주도의 미술 공모전이다. 당시 미술가들이 화단에 진입하고 작품을 알리는 중요한 통로로 기능한 동시에, 조선총독부의 문화정책 아래 만들어진 식민지 미술제도이기도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전람회를 통해 성장한 작가들이 광복 이후 한국 미술계의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한국 근대미술의 일본화를 촉진한 측면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냈거나 수상했다는 사실만으로 개별 작가의 친일 행위를 곧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시 조선미전은 식민지라는 제약 속에서도 많은 조선인 작가가 활동하고 성장한 주요 등용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일제가 총력전 체제를 강화하면서 미술계의 상황도 달라졌다. 일제 말 조선미술가협회는 반도총후미술전람회를 개최하고 결전미술전람회를 후원하는 등 전쟁 시국을 뒷받침하는 선전·선동미술의 주축으로 기능했다.

정종여가 1944년 ‘상재전장’을 출품해 특선한 결전미술전람회도 이런 전시체제 속에서 열린 전람회였다. 따라서 그의 일제 말 활동은 단순히 식민지 시기 조선미술전람회에 참가했다는 사실과는 구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시체제의 시국을 반영한 작품을 제작하고 결전미술전람회에서 특선했으며, 입영자에게 제공할 관음불상 1천 매를 기증했다는 구체적인 행적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정종여는 국내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직전 월북했다. 이후 평양미술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등 북한 미술계에서 활동했다.

▲ 묘향산, 종이에 수묵담채, 72x194cm, 1956, 유족소장, 정종여 作


미술관 “친일·월북까지 기록과 성찰”

그렇다면 영암군은 정종여의 이 같은 이력을 알고도 왜 그를 광복 81주년 기념 특별전의 작가로 선정했을까.

본지는 지난 12일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에 정종여의 친일 관련 이력을 기획 단계에서 알고 있었는지와 광복기념전 작가로 선정한 이유를 물었다.

미술관 측은 하정웅컬렉션에 소장된 정종여 작품 4점을 바탕으로 작가 한 사람씩 조명하는 ‘하정웅컬렉션의 작가들’ 전시의 하나로 정종여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종여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사실도 알고 있었다며, 이번 전시는 광복을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미술관 측은 정종여가 일제강점기와 광복·해방공간, 월북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겪은 작가라며, 한 작가의 삶을 ‘기록과 성찰’의 측면에서 다루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정종여의 삶과 작품세계를 미술사적으로 다시 살펴보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2019년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 절필시대’에서 정종여를 포함한 근대미술가 6명을 소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당시 정종여를 해방기 정치적 혼란 속에서 월북해 남한에서의 활동이 중단된 작가로 설명했다.

미술관 측은 이번 특별전 역시 정종여의 친일 관련 행적을 배제한 채 작품만 조명하는 전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미술관 측에 따르면 전시장에서는 정종여가 결전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사실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에필로그에도 관련 내용을 담았다. 한 작가의 일생을 통해 격동의 근현대사를 돌아보고 관람객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함께 고민하도록 전시를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또 친일과 월북이라는 이력 때문에 정종여가 미술사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친일인명사전』 수록 사실도 전시에서 언급하고 관람객에게 판단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 지리산 풍경, 종이에 수묵담채, 48x27cm, 1938 ~40, 유족소장, 정종여 作


미술관 “전시장엔 소개”…홍보자료엔 빠져

하지만 미술관 측이 설명한 이 같은 기획 취지는 광복 81주년 기념 특별전을 알리기 위해 영암군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군 보도자료는 정종여가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과 입선을 거듭했다는 이력과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은 소개하면서도, 미술관이 이번 전시에서 ‘기록과 성찰’의 대상으로 함께 다루고 있다는 일제 말 친일 관련 행적이나 『친일인명사전』 수록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본지가 실제 전시에서는 다루고 있다는 이 같은 역사적 맥락이 보도자료에서 빠진 이유를 묻자 미술관 측은 관련 내용을 보도자료에서 누락했다고 인정했다.

미술관 측은 “보도자료에는 관련 내용을 빠뜨린 것 같다. 죄송하다”는 취지로 답하면서, 실제 전시장에서는 정종여의 친일 관련 이력까지 다루고 있다고 거듭 설명했다.

미술관 측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특별전은 정종여의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함께 조명하면서, 친일과 해방, 분단과 월북으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돌아보자는 취지다. 이는 군이 당초 보도자료에서 밝힌 ‘정종여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시 조명한다’는 기획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광복 81주년이라는 이름을 내건 특별전의 취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군 보도자료에서는, 그런 역사적 성찰의 한 축이라고 할 정종여의 친일 관련 이력이 빠졌다. 작품과 작가의 삶을 함께 조명하는 이번 전시를 그의 생애에 남은 불편한 역사와 더불어 어떻게 바라볼지는 관람객과 지역사회의 판단으로 남는다.

특별전 ‘청계 정종여’는 오는 10월 11일까지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상설전시실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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