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농업용수, 양만 맞춘다고 끝이 아니다
영암열린신문입력 : 2026. 08. 28(금) 12:08
광주 군공항 부지에 들어설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나주호 농업용수 일부를 산업용으로 활용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나주호 물을 이용해 온 영암 신북면과 시종면 일부 등에는 영산강 물을 끌어와 부족분을 보완하는 농업용수 공급체계가 마련될 예정이다.
국가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안정적인 용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호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기반을 구축하는 일 역시 지역의 산업구조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기존 농업용수 이용체계를 바꾸는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부가 먼저 증명해야 할 것은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기존 농민들의 영농 여건이 조금도 나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북과 시종 일부는 오랫동안 나주호 물로 농사를 지어왔다. 용수로 말단부라 극심한 가뭄 때 물이 제때 도달하지 못하는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2020년 영산강 물을 끌어오는 신북지구 농촌용수이용체계재편사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양수장과 송수관로 노선까지 정한 사업은 물 사용 허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2023년 중단됐다.
이후 농민들은 기존처럼 나주호 물을 이용했고, 수위가 크게 낮아지는 상황이 아니면 최근 용수공급에도 큰 차질은 없었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사업을 다시 움직인 직접적인 계기는 현재의 농업용수난이 아니라 반도체 산단이라는 새로운 물 수요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농업용수 시설 보강이 아니다. 농업에 사용하던 나주호 물 일부를 산업용으로 돌리고, 기존 수혜 농경지에는 다른 수원의 물을 공급하는 물 배분체계의 재편이다. 정부가 “부족분은 다른 물로 보완하겠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농업용수는 톤수만 맞춘다고 같은 물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때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하고 농업용수로 적합한 수질도 갖춰야 한다. 오랫동안 이용한 수원을 바꾸려면 영산강 대체수의 수질과 계절별 변화, 장기간 이용의 적합성, 관리방안까지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해야 한다. 공급량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영농조건까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공급 순서도 분명해야 한다. 대체 농업용수 시설을 갖추고 실제 공급능력을 확인하기 전에 나주호 물부터 산업용으로 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극심한 가뭄으로 나주호와 영산강의 수량이 동시에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 비상시 물 배분 원칙은 무엇인지 사전에 정해 둬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됐다고 사업의 모든 장애물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기존 사업을 멈춘 것은 영산강 물 취수를 위한 허가 협의였다. 취수 지점을 죽산보 상류에서 하류로 옮기더라도 하천수 사용 허가와 관계기관 협의는 별도로 거쳐야 한다. 정부와 한국농어촌공사는 사업비와 공급량, 착공·준공 일정은 물론 반도체 용수 공급과 대체 농업용수 시설 구축의 일정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농민과의 소통은 그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 수십 년간 사용한 농업용수의 공급원이 달라지는 일은 행정기관이 도면 위에서 관로 하나를 옮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떤 물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기존보다 불리한 조건은 없는지, 가뭄 때도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직접 이용하는 농민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것이 순서다.
반도체 산업과 농업을 서로 경쟁하는 대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국가가 새로운 산업을 위해 기존의 물 배분체계를 바꾸려 한다면 그에 따르는 비용과 책임까지 국가가 부담하면 된다. 오히려 이번 사업을 계기로 신북·시종의 가뭄 대응력과 농업용수 공급 안정성이 과거보다 높아진다면 산업용수 확보와 농업기반 개선을 함께 이룰 수도 있다.
전제는 분명하다. 대체 농업용수는 단순히 같은 양의 물이 아니라 최소한 기존과 같은 수준의 영농조건을 보장하는 물이어야 한다. 정부가 먼저 확정해야 할 것은 반도체로 보낼 물의 양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