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를 두고, 어머니는 뒷산으로 갔다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5) #08
이민정 기자입력 : 2026. 08. 28(금)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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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진실규명대상자 문○례(2다-6958, 신청인 박○례)

진실규명대상자 문○례(文○禮, 여, 1922년생, 가사)은 1951. 1. 19.(음력 12. 12.) 영암면 장암리 뒷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박○례(1941년생, 며느리)의 진술에 따르면,1) 문○례는 군서면 동구림리 325번지 동계마을에서 남편, 자녀 4명과 함께 거주하였다. 문○례의 남편 최○섭은 보도연맹에 가입하였다는 이유로 1950. 7. 22.(음력 6. 8.) 금정면에서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다.2)

문○례는 1951. 1. 19.(음력 12. 12.) 집에 찾아온 경찰에 의해 영암면 장암리 뒷산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문○례의 시어머니가 장암리 뒷산에서 문○례의 시신을 발견하여 수습하였다. 문○례의 시신은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집안 소유의 산에 매장되었다. 문○례의 제삿날은 음력 12. 11.이다.

신청인은 언젠가 시누이 최○○(문○례의 딸)과 함께 영암군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시누이가 택시에서 내리더니 택시 기사가 자신의 어머니 문○례를 사망하게 만든 사람이었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참고인 최○상(1938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군서면 동구림리 동계마을에 살던 최○길의 부모가 한국전쟁 때 희생되었다. 최○길의 아버지 최○섭은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되었고, 최○길의 어머니 문○례는 1950. 10. 이후에 희생되었다. 최○길과 그 형제들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고모와 함께 살았다.

문○례의 사망일이 제적등본에는 ‘1958. 5. 10. 본적지에서 사망(1961. 4. 10. 신고)’으로, 족보에는 ‘1950. 11. 13. 졸(卒)’로 기재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문○례의 시신이 영암면 장암리 뒷산에서 시어머니에 의해 수습된 점, (2) 문○례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12. 11.인 점, (3) 족보에 기재된 문○례의 사망일이 1950. 11. 13.로 실제 사망일의 음력 날짜와 약 1달 차이가 나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문○례는 1951. 1. 19.(음력 12. 12.) 영암면 장암리 뒷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본 사건의 신청인은 문○례의 아들 최○길이었으나, 최○길이 2022. 3. 사망하여 최○길의 부인 박○례로 신청인 지위를 승계하였다.
2) 진실규명대상자 최○섭(2다-6957)에 대해서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조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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