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었다는데 왜 난 받은 게 없지
영암열린신문입력 : 2026. 08. 28(금) 10:13
가가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사랑이 다가오면 먼저 등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오래된 믿음이 마음 깊숙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할수록 관계는 반복해서 무너진다. 진정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시작될수록 먼저 도망치는 이유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간 경우에도 막상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되면 이별을 선택한다. 이런 심리 유형은 ‘나는 언젠가 버려질 거야’, ‘나는 저 사람에게 필요한 어떤 수단일 뿐이야’ 같은 부정적인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처를 미리 떠올리고 두려워한 나머지, 결국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서른여섯 살인 K씨는 벌써 열 번 넘게 진지한 연애를 했다. 단순히 잠깐 만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결혼까지 예상했던 관계만 그 정도였다. 그녀가 선택하는 남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른바 ‘킹카’라 불릴 만큼 잘생기고, 사교성이 좋으며, 집안 환경까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그런 남자들을 어렵게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남자가 자신에게 가장 깊이 빠진 순간이 되면 냉정하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는 타고난 팜파탈(femme fatale)이어서 남자를 갖고 놀았던 것일까. 어느 날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우리 부모님은 저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왜 저는 받은 게 없는 것 같을까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왜 받은 게 없어? 이렇게 예쁘게 잘 키우셨잖아. 혹시 사랑을 주지 않았던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 같은 걸까? 그래서 남자를 사귀자마자 차는 걸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복수심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럼 남자를 차고 나면 기분이 어때?”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더러워요.”

“왜 더러워?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잖아.”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솔직히 현실적으로는 그 사람들한테 맞춰 연애할 형편이 아니거든요.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고, 내세울 것도 없고….”

그 순간 그녀의 당당하고 도도해 보이던 모습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랑을 확인하려는 연애의 굴레

관심과 사랑에 허기진 사람은 자신의 존재감을 쉽게 위축시킨다. 자신의 외모와 매력에는 상당한 자신감을 지닌 그녀도 마음속에서는 스스로를 작고 초라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반작용으로 자신을 실제보다 더 크고 당당한 모습으로 포장했고, 가장 빛나는 사람들만 선택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초라한 진짜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 먼저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녀의 행동 밑바탕에는 오래된 결핍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을 한 번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었다. 자신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사랑에 대한 허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독된 것은 사랑 자체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반한 사람들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쾌감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연애는 오래갈 수 없었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이미 지쳐 있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더 괴롭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이제 그런 황폐한 연애는 그만해도 된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책 한 권을 소개하며 그 말을 대신 전했다.


나를 믿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간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고 어머니에게서 믿기 어려운 폭력과 따돌림을 당했던 영국의 흑인 여성 콘스턴스 브리스코는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학대와 모멸을 견디며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판사가 되었고, 자신의 삶을 담아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를 펴냈다. 이 책에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장면이 나온다.

“이 세상에는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어.”

“그게 누군데요?”

“바로 너야.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너는 멀리까지 나아갈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냥 가기만 하면 돼.”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을 가로막는다니. 그런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 약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잘못이 없어도 세상의 눈치를 본다.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의외로 더 많은 사람이 모든 잘못을 자기 안에서 찾으며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착해서가 아니라 두렵고 약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약함 속에서도 자신을 믿는 일이다.

콘스턴스 브리스코가 위대한 이유는 최초의 흑인 여성 판사가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극심한 모멸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고,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끝내 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세상은 자신을 믿는 사람을 결국 믿어준다는 사실을 가슴에 품고 다시 일어섰다.

자신을 믿으며 자신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는다.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고, 함께 걷고 싶어진다. 자기를 믿는 마음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자신을 넘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함께 살아갈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를 붙잡는 삶보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으로 자신을 지켜내는 삶이 결국 가장 단단한 사랑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김영아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건강소식 2026년 08월호 中 발췌

건강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영암열린신문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