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을 놓은 자리 (2)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5) #06
이민정 기자입력 : 2026. 08. 21(금) 10:24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전○순과 전○순의 남편 최○○가 영암경찰서에 갇혀 있을 때, 경찰이 둘 중 1명은 교도소에 가야 한다고 해서 최○○는 목포교도소로 가게 됐고, 전○순은 영암경찰서에 남았던 것인데, 전○순은 희생되었고, 최○○는 1951년 가을경 집으로 돌아왔다.1)
참고인 최○상(1938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군서면 동구림리 살던 최○배의 어머니 전○순은 손재주가 좋아 재봉틀로 옷 만드는 일을 했고, 그 외 다른 일은 하지 않았는데,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최○배가 동생을 업고 어머니를 만나러 영암경찰서에 다녀오곤 했다.
전○순의 사망일이 제적등본에는 ‘1950. 12. 11. 본적지에서 사망(1955. 4. 26. 신고)’으로, 족보에는 ‘기(忌) 12월 11일’로 기재되어 있다.2)
2007년 피해자현황조사에 ‘전○순, 여, 34, 군서면 동구림리, 1948. 11. 22., 영암읍 대신리, 총살, 군경’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전○순의 시신이 영암면 대신리 야산에서 시아버지 등 가족들에 의해 수습된 점, (2) 신청인 최○배가 영암경찰서에 감금되어 있는 전○순을 만나고 왔던 점, (3) 전○순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할아버지와 당숙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신청인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4) 신청인이 전○순의 묘를 이장할 때 전○순의 두개골이 깨져 있는 것을 목격한 점, (5) 전○순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12. 11.이고, 제적등본에 기재된 사망일이 1950. 12. 11.인 점, (6) 전○순의 희생사실을 참고인 최○상이 인지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전○순은 인민군 점령기에 자신이 쓰는 재봉틀을 인민군에게 빼앗겼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붙잡혀 영암경찰서에 감금되었다가 1951. 1. 19.(음력 12. 12.) 영암면 대신리에 있는 야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최○배 진술조서(2021. 11. 16.) 1950~1951년에 최○○가 목포교도소에 수감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행형기록을 검색해 보았으나 해당 시기 최○○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2) 『낭주최씨세보(朗州崔氏世譜)』권지1, 19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