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피서법
영암열린신문입력 : 2026. 08. 21(금)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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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더위와 두려운 햇볕은 달라진 적 없고 수레와 말이 내달리는 일도
사라진 적 없었으며 거리의 소란도 줄어든 적 없었다.
그런데 나만 홀로 서늘했던 것은 마음을 맑게 한 효험이었다.

虐炎畏日, 未嘗改也, 車馳馬奔, 未嘗無也, 九街喧囂, 未嘗少間, 而吾身獨凉者, 淸心之効.
학염외일, 미상개야, 거치마분, 미상무야, 구가훤효, 미상소간, 이오신독량자, 청심지효.


- 양진영(梁進永, 1788~1860), 『만희집(晩羲集)』 「청심설(淸心說)」




연일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한여름에 접어들었다. 뉴스에서는 ‘이중열돔’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연일 등장하고, 핸드폰에서는 폭염 대비 경보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울린다. 특히나 도심에서는 에어컨 실외기, 도로 위 자동차,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로 인해 실제 기온보다 더 무덥게 느껴진다. 요즘 같은 날씨에 더위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 구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마음을 아무리 맑게 먹어도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안경에는 김이 서리고 햇볕 아래 5분만 서 있으면 마음보다 먼저 등이 젖는다. 에어컨을 끄고 ‘청심(淸心)’을 외쳤다가는 가족들의 마음만 뜨거워질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 문인 양진영(梁進永)이 겪은 여름도 만만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먼지가 길을 뒤덮은 데다가 온갖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고, 집 안에 있으면 좁고 후텁지근해서 마치 불 속에 들어앉은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더위 속에서 얼음 덮인 하늘과 눈 쌓인 바다 사이로 훌쩍 날아가고 싶었다고 하였는데, 예나 지금이나 폭염 앞에서 사람이 품는 소망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결국 번잡한 거처를 떠나 반촌의 낡은 집을 빌렸다. 처마에서는 비가 새고 벽에는 달팽이가 기어 다니는, 요즘으로 치면 냉방은커녕 숙소 후기부터 걱정스러운 집이었다. 그런데 불평 대신 방을 깨끗이 쓸고 평상 하나를 놓고서 낮에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지내고 밤에는 문을 열어 바람을 맞았다. 며칠 뒤 그는 꿈속에서 바다에 이르렀는데, 끝없는 파도가 하늘로 치솟고 거센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는, 몸이 떨릴 만큼 서늘한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 보니 더위는 그대로였다. 햇볕도 약해지지 않았고 수레와 말의 소란도 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그의 마음이었다.

이 글을 더위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폭염은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을 자주 마시고 가장 더운 시간에는 외출을 삼가고 냉방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다만 에어컨으로도 식히기 어려운 더위가 하나 있다. 바로 내 마음으로 옮겨붙은 열기이다. 배달이 늦어도 덥고 길이 막혀도 덥고 누가 말을 걸어도 더워진다. 이 구절에서 말한 청심은 그 마음의 열기를 식히는 일에 가깝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을 정돈해 바람이 드나들 틈을 만드는 것이다. 꼭 근사한 곳으로 피서를 떠날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애써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시원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조용히 책을 펼치는 일도 좋다. 세상의 온도는 당장 낮출 수 없지만 마음속 온도까지 최고 기온을 기록하게 둘 필요는 없다.

올여름도 햇볕은 뜨겁고 거리는 시끄럽다. 더위는 여전히 제 할 일을 성실히 한다. 그러니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 에어컨을 켜고 물을 마시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 세상은 그대로 뜨거운데 문득 나만 조금 서늘해지는 순간, 그것이 옛사람이 발견한 소박한 피서법이다.

김연주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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