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로’도 참여예산이 된다…관건은 ‘주민 설계’
지난해 반영 17건 중 시설·공사성 11건
별량·부평, 문제 당사자 참여로 제안 발굴
행안부 개선사항 반영…실제 이행이 관건
별량·부평, 문제 당사자 참여로 제안 발굴
행안부 개선사항 반영…실제 이행이 관건
선호성 기자입력 : 2026. 07. 16(목) 11:13

영암군은 올해 주민참여예산 제안사업 공모의 ‘제외 대상’ 항목에 소규모 숙원사업을 지양한다고 적고, 농로 포장과 배수로 정비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2026년도 본예산에 반영된 17건에는 ‘미암 흑암마을 호우피해 구거정비공사’와 ‘미암 두억리 학평마을 구거 구조물 정비공사’ 등 구거 정비사업 2건이 포함됐다.
지난해 영암군 주민참여예산에는 모두 80건이 접수돼 17건, 2억 2400만 원이 올해 예산에 반영됐다. 본보가 사업명을 기준으로 보안등·가로등·구거·보관함·현수막 게시대·재활용 동네마당 등을 시설 설치·공사성 사업으로 분류한 결과, 17건 가운데 11건이었다. 해당 목록에 기재된 소요예산은 1억 8700만 원으로 전체 반영액의 약 83.5%를 차지했다.
지난 14일 영암군의회 자치행정위원회에서도 읍·면 건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한 배수로와 포장, 마을회관 개보수 사업이 주민참여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제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렇다고 배수로나 도로 정비 같은 시설사업 자체가 주민참여예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지역 사례를 보면 사업의 종류보다 누가 어떤 문제를 찾아냈고, 해법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 주민이 어떻게 참여했는지가 일반 건의사업과 주민참여예산을 구분하는 요소로 나타난다.
시설사업도 ‘문제의 구체성’이 차이
서울 성북구 성신초등학교 통학로는 시민참여예산으로 정비된 시설사업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정문에는 과속방지턱과 단속카메라·횡단보도 등이 설치됐고, 좁고 가파른 후문에는 미끄럼을 줄이는 보도블록과 어린이 높이에 맞춘 계단이 마련됐다. 학교 주변을 일률적으로 정비하기보다 구간별 위험요인에 따라 개선방법을 달리했다. 이 사업은 2021년 서울시 시민참여예산 한마당 총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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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참여예산으로 조성한 서울시 성북구 성신초등학교 통학로 |
같은 성북구 장애인복지관 앞 육교의 엘리베이터 설치도 결과만 보면 일반적인 시설 보강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없던 당시 휠체어 이용자 등은 길을 건너기 위해 약 300m를 우회해야 했다. 시민이 이를 참여예산사업으로 제안했고, 사업이 통과되면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두 사업의 차이는 시설 규모나 사업비보다 문제를 겪는 사람과 장소, 개선해야 할 지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데 있다.
영암의 배수로나 마을안길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반복 침수지점과 피해 범위, 도로 이용 불편을 주민이 조사하고 정비가 시급한 구간과 우선순위를 함께 논의했다면 주민참여예산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읍·면 건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한 공사를 별도의 주민 조사나 논의 없이 다시 제출한다면 일반 숙원사업과의 차이는 희미해진다.
참여자 구성이 제안 내용 바꿔
영암군의회 김기천 의원은 상임위에서 순천시 별량면 청소년들의 참여 사례를 들었다.
김 의원은 학생들이 학교와 마을에서 겪는 문제를 찾고, 예산의 설계부터 집행·평가까지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주민참여예산학교 역시 읍·면별 참석 인원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주민이 자신의 문제를 제안하도록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지난 6월 26일 열린 제6회 별량 청소년 정책마당에서는 별량초·송산초·순천별량중 학생들이 마을을 조사해 쓰레기 문제와 노후시설 정비, 갯벌 환경 등 15건의 정책을 제안했다. 제안은 주민총회를 거쳐 주민참여예산사업과 연계될 예정이다.
순천시의 앞선 주민총회 자료에서도 청소년 정책마당 운영과 학생 제안이 주민총회 표결을 거쳐 마을계획에 반영된 기록이 확인된다. 다만 공개자료만으로 학생들이 개별 사업의 집행과 사후평가에 어느 범위까지 직접 참여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별량면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은 학생들에게 막연히 참신한 사업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 문제를 조사하고 정책으로 다듬어 주민총회와 예산 절차에 전달하는 별도의 장을 지속해서 운영했다는 점이다.
인천 부평구는 올해 4월 22일부터 6월 13일까지 9차례에 걸쳐 계층별 참여예산학교를 운영했다. 다문화가족과 어린이·청소년, 청년, 노인, 장애인, 자원봉사자와 학부모 등 164명이 참여해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제안서를 작성했다.
특히 올해 처음 개설한 장애인 참여예산학교에는 장애인 당사자와 시설 종사자 26명이 참여했다. 제안사업은 아직 선정·집행된 사례가 아니며, 관련 부서 검토와 온라인 주민투표, 주민참여예산위원회·민관협의회 심의를 거쳐 2027년도 예산 반영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부평구 사례는 성과가 확정된 우수사업이라기보다 제안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사례에 가깝다.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주민을 별도로 모집할 경우 기존 위원회에서 쉽게 다뤄지지 않았던 문제도 제안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안 이후까지 이어진 주민 참여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의 역할이 사업 제안과 예산 확보에서 끝나지 않은 사례다.
2006년 주민들의 마을도서관 건립 요구에서 시작됐지만 부지를 마련한 뒤에도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지연됐다. 주민들은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3년에 걸쳐 35억원을 확보했고, 신축 대신 기존 다세대주택을 개보수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건물 보수와 공간 구성에도 주민 의견이 반영됐으며, 도서관은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9년 만인 2015년 문을 열었다.
개관 뒤에는 주민들이 만든 은평도서관마을사회적협동조합이 도서관을 위탁 운영했다. 협동조합이 구립도서관을 위탁 운영한 국내 첫 사례로 소개된다. 주민이 시설 건립을 요구한 뒤 떠나지 않고 조성과 운영까지 참여한 것이다.
모든 참여예산사업에서 제안자가 직접 운영자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주민의 참여를 제안서 제출로 한정하지 않고, 사업 추진상황 확인이나 완료 뒤 이용실태·개선사항 평가로 연결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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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참여예산으로 만든 서울시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도서관 |
‘개선사항(행안부)’ 반영…계획과 실행 사이
영암군이 지난 3월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총회 자료에 수록한 ‘2026년 주민참여예산제도 운영계획’에는 기존 제도의 미흡한 부분과 개선방안이 함께 담겼다.
자료의 ‘개선사항(행안부)’에는 ▲주민제안사업 선정 때 주민투표·설명회·공청회 미실시 ▲사업성 검토를 위한 현장방문 미이행 ▲포상·인센티브 미제공 ▲결산보고·평가·환류계획 미흡 ▲제안 접수 뒤 컨설팅과 전문가 지원 부재가 적시됐다. 문서만으로 이것이 행정안전부 성과평가 결과인지, 별도의 권고·점검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군은 개선방안으로 운영계획에 대한 군민 의견수렴과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총회, 제안사업 현장 모니터링, 포상제 도입, 전문가 컨설팅 운영 등을 제시했다.
전문기관과 연계한 맞춤형 예산학교도 4월부터 6월까지 모두 6차례 운영할 계획이었다. 대상은 주민참여예산위원과 청년분과위원, 읍·면 주민자치회 등으로, 강의와 토의를 병행하고 우수사례 공유와 사업제안서 작성 컨설팅을 진행하도록 했다. 8월에는 주민참여예산위원과 관련 부서 팀장이 제안사업 현장을 방문해 시급성과 적정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군은 같은 자료에서 2025년 행정안전부 주민참여예산제도 성과평가 ‘우수’ 지자체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외부 평가에서 우수 판정을 받았더라도 주민 선정 과정과 현장검토, 결산·환류, 제안자 지원에는 보완할 지점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관건은 계획이 실제 운영에서 어느 정도 구현됐는지다.
총회 자료에는 계획한 예산학교의 실제 개최 횟수와 회차별 참여 인원, 읍·면별 모집 방식, 교육을 통해 발굴된 제안 건수와 컨설팅 이후 보완된 사업이 제시돼 있지 않다. 상임위에서 다시 제기된 숙원사업 편중과 ‘할당식 참여’ 문제는 계획서에 담긴 참여형 교육과 전문가 지원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확인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번 조례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자치계획과 연계된 사업을 우선 검토하고, 우수 제안자와 채택사업 추진부서를 포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주민을 어떤 방식으로 모집하고, 접수된 제안을 어떻게 보완하며, 사업 선정 이후 주민의 참여를 어떻게 이어갈지는 개정 조문에서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포상은 참여 확대를 유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의 실질화 여부를 판단하려면 지난해 80건이 어떤 조사와 숙의를 거쳐 17건으로 압축됐는지, 올해 계획한 주민 의견수렴과 현장 모니터링·전문가 컨설팅이 실제로 시행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영암군 주민참여예산이 기존 읍·면 건의사업과 구별될 수 있을지는 사업이 배수로인지 프로그램인지보다, 주민이 문제를 찾고 해법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 어느 정도 참여했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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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민 제안 12건, 내년 예산 반영 여부 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