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은 저녁 (1)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5) #05
이민정 기자입력 : 2026. 07. 16(목)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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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군서면 희생 사건

군서면은 월출산을 끼고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면서 군경 및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1945. 8. 15. 해방 이후 영암지역에서 활동하던 좌익단체들은 미군정의 점령이 시작되자 그 활동이 약화되었고, 경찰을 피해 월출산, 금정면 등으로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하였다. 1947. 10. 이후에는 월출산과 금정면에 근거지를 둔 유격대가 형성되었고,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자신들의 활동을 저지하고자 하는 경찰과 끊임없이 충돌하였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에는 목포·무안 등 타 지역의 인민군과 좌익이 후퇴 또는 입산을 위해 영암지역으로 몰려들었고, 이후 군서면에서는 인민군·지방좌익에 의한 희생 사건과 군경에 의한 희생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진실규명대상자 정○채(2다-467, 신청인 정○화)

진실규명대상자 정○채(鄭○采, 남, 1927년생, 농사)는 1949. 12. 2.(음력 10. 13.) 군서면 도갑리 평리마을 밭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정○화(1957년생, 조카)의 진술에 따르면, 정○채는 부모, 동생들과 함께 군서면 도갑리 669번지 평리마을에서 거주하였다. 정○채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해방 이후 영암군으로 돌아왔다. 1949. 12. 2.(음력 10. 13.) 해 질 무렵, 정○채는 집에 찾아온 군서지서 경찰 2명에게 끌려 나갔다. 가족들이 궁금해서 밖을 내다보니, 경찰이 가족들이 쳐다보는 것을 의식하여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자면서 정○채를 데리고 나갔다. 그날 밤이 되어도 정○채는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마을주민이 정○채의 가족에게 집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밭에 정○채의 시신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소식을 알려준 마을주민, 정○채의 아버지와 동생이 정○채의 시신을 수습하여 영암면 개신리에 있는 정씨 선산에 매장하였다. 현재도 그곳에 묘가 있다. 가족들이 정○채의 시신을 집으로 가져왔을 때 얼어 있던 시신이 녹으며 총 맞은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제삿날은 음력 10. 12.이다.

참고인 김○○(1935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참고인이 어느 날 아침, 길을 걷다가 밭에 하얀 것이 있어서 가까이 가서 봤더니 정○채의 시신이었다. 참고인은 정○채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경찰한테 잡혀서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고인 이○순(1936년생, 여,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어느 날 저녁, 정○채의 집에 경찰이 찾아와서 정○채를 데리고 갔고, 다음날 아침, 정○채의 가족들이 정○채의 시신을 수습해왔다. 같은 마을에 살던 참고인은 정○채의 시신에 서리가 내려앉았던 것, 정○채의 가족들이 천으로 정○채의 시신을 묶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였다.1)

제적등본에는 정○채가 ‘1949. 10. 13. 본적지에서 사망(1950. 2. 27. 신고)’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정○채가 미혼으로 사망하여 족보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정○채의 시신이 군서면 도갑리 평리마을 밭에서 가족에 의해 수습된 점, (2) 참고인들이 정○채의 시신을 목격한 점, (3) 정○채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10. 12.이고, 제적등본에 정○채의 사망일이 1949. 10. 13.로 기재되어 있는 점, (4) 정○채의 시신을 수습한 가족들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신청인 정○화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정○채는 1949. 12. 2.(음력 10. 13.) 집에 찾아온 경찰에게 끌려가 군서면 도갑리 평리마을 밭에서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이○순 진술조서(2022. 1. 10.) 이○순은 2다-1635-1 사건의 신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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