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통한 ‘조치’ 경고에 농막 자진 철거…단순 조사였나
하천부지 전수조사에 이장 동원…행정절차 ‘우회’ 논란
대상 토지에 조정금 청구하면서 이장 통해 소유자 조회?
소하천 걸친 농지를, 군은 ‘국가 하천 부지’라 불렀다
대상 토지에 조정금 청구하면서 이장 통해 소유자 조회?
소하천 걸친 농지를, 군은 ‘국가 하천 부지’라 불렀다
선호성 기자입력 : 2026. 04. 24(금) 11:03

지난 13일 오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의 한 농지 주인이 자기 땅에 있던 농막 화장실을 포크레인으로 부쉈다. 마을 이장으로부터 “조치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직후였다. 이튿날 오후, 영암읍사무소 건설도시팀장이 포크레인을 실은 공사 차량을 타고 현장을 찾아왔다. 땅 주인은 행정대집행이 온 줄 알았다.
공문 간 닷새, 엇갈린 두 부서
다시 닷새 전으로 돌아간다. 4월 8일, 영암군 민원소통과 지적팀은 문제의 농지 소유자 앞으로 공문을 발송했다. 지적재조사 조정금 채권 행사와 관련된 공문으로, 소유자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영암군수 직인이 찍혀 있었다. 민원소통과가 이 땅 소유자를 누구로 인지하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나는 문서였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13일 오후, 같은 군청 산하 영암읍사무소 건설도시팀은 장암리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장은 “번지수를 불러주며 이 땅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번지는 군 민원소통과가 닷새 전 공문을 보낸 바로 그 땅이었다.
한쪽은 공문을 보내고, 다른 쪽은 이장에게 묻고 있었다. 같은 군청, 같은 땅, 같은 주인을 두고 벌어진 일이다.
‘국가 하천 부지’와 공식 지도 사이
왜 이 농지가 조사 대상이 됐는지, 영암읍사무소 건설도시팀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행정안전부와 한국국토정보공사가 공동으로 하천·계곡 전수조사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 시스템이 영암읍에만 93건의 시설물을 걸러냈다고 한다. 문제의 농지도 그중 하나였다. 팀장은 본지 취재에서 해당 토지를 “국가 하천 부지”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땅의 공식 토지이용계획확인서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장암리 274-2 필지의 용도지역은 ‘농림지역’이며, 농업진흥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회화천이 지나가는 소하천구역은 이 필지의 북서쪽 경계 일부에만 접한다. 필지 본체는 소하천과 관계없는 농지다. 필지를 관통하는 하천도 없다. 회화천은 옆 필지(장암리 985-8, 지목 ‘천’)를 통해 흐른다. ‘국가 하천’은 하천법, 소하천은 소하천정비법을 각각 따르며 소관 부처와 절차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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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세 진술, ‘조치’는 어디서 왔나
영암읍사무소 건설도시팀장 해명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행위자’다. 팀장은 본지 취재에서 자신이 “이장을 통해 이 행위자가 누구인지만 파악했다”고 밝혔다. 철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행위자가 이장 말만 듣고 장비를 동원해 부쉈다”고도 했다.
그러나 장암리 이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팀장으로부터 받은 질문을 “이 번지수 여기가 누구냐”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시설물 설치자가 아니라 토지 소유자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장은 그 질문을 받은 뒤 땅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나라에서 전수조사를 한다”고 전달했다고 한다.
소유자의 기억은 다르다. “조치를 내가 안 하면 조치한다고 정확히 들었다.” 소유자는 본지 취재에서 두 차례 반복해 이 말을 강조했다. ‘조치’는 행정 용어다. 이장이 일상 대화에서 흔히 꺼내 쓸 단어가 아니다.
세 당사자의 진술이 어긋난다. 팀장은 “행위자 파악”이라 했고, 이장은 “소유자를 물었다”고 했으며, 소유자는 “조치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이장을 거친 전달 과정에서 무언가가 증폭됐거나, 애초부터 조사가 아닌 압박이었을 가능성이 남는다.
양성화 흐름과 역행하는 철거
부서진 시설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각도가 있다. 정부는 2024년 12월 농지법을 개정해 농지전용 절차 없이 가설건축물 형태로 설치할 수 있는 농촌체류형 쉼터(33㎡)를 신설했다. 개정 농지법은 농막의 데크와 정화조 설치도 허용했다. 농막 부속 시설물을 ‘불법 철거 대상’이 아니라 ‘양성화·신고 유도 대상’으로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흐름이다.
소하천정비법에도 경과조치가 있다. 제14조 제5항에 따르면, 소하천 지정·고시 이전부터 존재하던 시설물의 설치자는 고시일로부터 1년 이내에 관리청에 신고하기만 하면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 회화천이 소하천으로 지정·고시된 날짜는 2020년 9월 24일이다.
영암군이 이들 조항에 대해 검토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직 행안부 공문 하달만 강조했다.
법이 그린 순서, 실제 진행된 순서
소하천구역 안에 무허가로 보이는 시설물이 확인됐을 때, 법이 정한 처리 순서는 이렇다. 토지대장과 등기부 조회로 소유자를 확정하고, 소유자에게 ‘서면’으로 사실 확인을 요청한다. 소하천정비법 제14조 제5항의 경과조치(고시 이전 설치분 신고 간주) 적용 여부를 검토한다. 경과조치 대상이 아니면 점용허가 신청을 안내하고, 신청이 없으면 시정명령 ‘공문’을 발송한다. 불응 시 청문 절차를 거쳐 행정처분에 이른다. 각 단계는 ‘문서’로 기록되며, 당사자는 단계마다 의견을 낼 권리를 갖는다.
이번 사안에서 실제 진행된 순서는 달랐다. 행정안전부 전수조사 시스템이 영암읍에 93건을 자동 분류해 내려보냈고, 읍사무소 건설도시팀은 공부 조회 대신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소유자를 파악했다. 서면 통지 대신 이장의 구두 전언으로 “조치”가 전달됐다. 소유자는 본지 취재에서 “번지수만 치면 지목이고 소유자고 다 나오는데, 왜 이장한테 두세 번 전화해서 난리를 치느냐”고 되물었다.
공부 조회의 자리에 이장의 구두 조회가, 시정명령 공문의 자리에 이장의 구두 전언이 들어갔다. 개인 땅임을 알리고 경과조치 적용을 주장할 기회, 점용허가를 신청할 기회, 의견을 서면으로 낼 기회는 작동하지 않았다. 건설도시팀장은 본지 취재에서 “철거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행위자만 파악하는 단계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이 정한 조사 단계는 ‘서면’으로 진행되도록 돼 있다.
이 사건의 구조는 이렇다. 영암군은 이 땅 소유자를 이미 공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같은 군청의 다른 부서는 공부를 열어보지 않았고,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법적 근거로 제시된 ‘국가 하천 부지’는 이 필지의 실제 용도지역과 달랐다. 경과조치 적용 가능성은 검토되지 않았다. 서면 통지도, 의견 제출 기회도, 청문 절차도 없었다. 그 자리에 이장의 구두 전언이 들어갔고, 그 끝에 자진 철거가 있었다. 법이 정한 절차가 하나씩 건너뛰어지면서 한 농민이 자기 땅의 시설물을 스스로 부수는 결과에 이르렀다.
영암군의 해명과 남은 과제
이튿날 현장 방문에 동행한 포크레인에 대해, 건설도시팀장은 본지 취재에서 인근 준공 검사를 위한 소장 차량이었다고 설명했다. 소유자의 오해라는 입장이다. 참고로 건축법상 준공 검사는 완공된 건축물이 설계도서대로 시공됐는지 확인하는 절차이며, 행정대집행법 제3조는 대집행 이전 서면 계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본지는 해명의 각 대목을 교차 확인했으나, 지적재조사 조정금 채권 행사 중인 토지의 소유자를 왜 이장에게 물었는지, ‘국가 하천 부지’로 분류한 근거가 무엇인지, 시설물 설치 시점 확인 전에 왜 당사자 접촉이 먼저였는지는 남는다. 영암읍에 내려온 93건 조사 중 유사한 사례도 확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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