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영암열린신문입력 : 2026. 09. 18(금)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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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때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낯선 언어를 배운다. 평생 농사를 짓던 이가 전력계통을 공부하고, 환경영향평가서를 들여다보고, 입지선정 절차와 관련 법률을 찾아 읽는다. 회의장을 찾고, 마이크를 잡고, 피켓을 들고, 어느 날에는 새벽부터 길 위에 선다. 지난해 9월부터 영암의 송전선로 반대 주민들이 지나온 시간도 그러했다.

고압송전선로·철탑건설반대 영암군대책위원회가 제7회 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의 ‘삼보일배오체투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위원회는 이들의 활동을 두고 평범한 농촌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공부하고 조직했다고 평가했다. 자신들의 고향과 삶터를 지키려는 행동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묻는 ‘공공의 실천’이라는 평가도 내렸다.

물론 상 하나가 송전선로를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판정문도 아니며, 지금껏 이어진 갈등의 승패를 가르는 선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 수상의 의미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벼이 볼 일도 아니다.

저항의 가치는 언제나 결과로만 환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주민들이 한 일은 단순히 ‘반대’라는 두 글자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수백 명이 한전 본사 앞으로 향했고, 1인 시위를 이어갔으며, 서명을 모으고 서울과 세종을 찾았다. 국민권익위원회를 만나고 주민설명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9월 첫 집회 이후 주민들의 문제 제기는 한전을 넘어 정부와 관계기관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전하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내는 일이 누구에게나 편안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마을 안의 걱정을 사회가 함께 듣고 판단해야 할 문제로 꺼내놓으려는 일이기도 했다. 삶의 문제를 공론의 언어로 바꾸는 것 역시 지난 1년 동안 주민들이 해온 싸움의 한 부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던진 질문은 조금씩 달라지고 넓어졌다. 왜 이 선로가 필요한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 전력을 사용하는 곳과 그 전력을 보내기 위해 부담을 감당하는 곳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국가적 필요라는 말과 한 사람의 삶터는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가. 어느 쪽의 답을 미리 정해놓지 않더라도, 이런 질문이 공론장에서 충분히 다뤄져야 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번 수상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상금이나 상패보다도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은 시간일지 모른다. 심사위원회가 주목한 것도 거기에 가까워 보인다. ‘평범한 농촌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공부하고 조직했다’는 평가가 그래서 오래 남는다. 거대한 제도와 전문용어 앞에서 자신의 삶에 관한 판단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알고 묻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제 10월에는 주민들이 요구해 온 공청회가 예정돼 있다. 이번 평가가 남긴 의미가 있다면, 지난 1년 동안 축적된 질문들을 공개된 자리에서 사실과 근거를 놓고 제대로 살펴볼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한 번의 수상이 지난 시간을 보상할 수는 없다. 끝나지 않은 갈등을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나 긴 길을 걷는 사람에게 때로 필요한 것은 종착지를 약속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확인일 수 있다.

이번 상은 영암 주민들에게 그런 작은 이정표쯤은 되어도 좋겠다. 아직 갈 길은 남아 있다. 그래도 주민들이 지난 1년 동안 던진 질문과 견뎌온 시간만큼은, 이미 하나의 공적 기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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