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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5) #11
이민정 기자입력 : 2026. 09. 18(금)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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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진실규명대상자 유○열(2다-7267, 신청인 유○숙)

진실규명대상자 유○열(柳○㤠, 남, 1922년생, 농사)은 1950. 12. 2.(음력 10. 23.) 덕진면 영등리 장등마을 부근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유○숙(1944년생, 딸)의 진술에 따르면, 유○열은 덕진면 영등리 142번지 장등마을에서 부인, 자녀들과 거주하였다. 유○열은 농사 짓는 일 외에도 마을의 빈집을 공부방으로 만들어 저녁에는 마을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었다.

1950. 12. 2.(음력 10. 23.) 밤, 유○열은 공부방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와 있던 경찰이 밤마다 돌아다니는 걸 보니 좌익활동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유○열을 붙잡아 갔다. 다음날 아침, 유○열의 부인은 마을주민으로부터 장등마을 부근에 유○열과 유○○(유○열의 친구)의 시신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유○열의 부인 등 가족들이 유○열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등마을 뒷산에 매장하였고, 나중에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문중 산으로 이장하였다. 제삿날은 음력 10. 22.이다.

참고인 유○후(1937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유○숙의 아버지 유○열이 경찰에게 끌려가 영등리 장등마을 앞에서 총살되었고, 시신은 수습되었다.

유○열의 사망일이 제적등본에는 ‘1966. 9. 7. 본적지에서 사망(1966. 9. 19. 신고)’으로 기재되어 있다.1) 1946년 형사사건부에 따르면, 유○열은 소요죄(騷擾罪) 등 위반으로 1946. 4. 23.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사실이 있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유○숙은 사망신고를 늦게 하면서 사망일이 제대로 신고되지 않은 것 같다고 진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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